변화를 관찰하자[ep.108]

우리는 매일 일터와 삶의 전장에서 수많은 문제점과 마주하며 살아간다. 비효율적인 프로세스, 시대에 뒤처진 규정, 혹은 소통의 병목 현상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웅성거리며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이것이 문제다”, “저 부서 때문에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라며 날카로운 지적의 칼날을 세운다.

그러나 냉혹한 실전의 판 위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지독하리만치 서늘하다. 웅성거리는 군중 속에서 그저 문제점만 지적하는 행위로는 세상의 그 어떤 얄팍한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 그것은 안 되는 이유를 찾으며 핑계 뒤로 숨는 도망자이자, 자신의 이성을 방치하는 또 다른 형태의 비겁한 행동이다.

진짜 판을 뒤흔들고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자들은 입이 아니라 손을 움직인다. 그들은 남들이 감정에 치우쳐 비난의 화살을 돌릴 때, ‘논리적인 판단력’을 근거로 가공되지 않은 하얀 백지 위에 ‘새로운 제안’을 던진다. 오늘은 비평가라는 고상한 가면 뒤에 숨어 나태함에 안주했던 모든 관성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회사를 변화시키는 진짜 주도성의 본질에 대해 단단한 독백을 기록해 본다.

비평가의 나태함과 변화를 거세하는 지적의 함정

학교에서 정답지 안의 지식만 파고들던 이들이 현실의 전장에 나와 가장 자주 범하는 어리석음은 바로 ‘완벽한 비평가’의 덫에 걸리는 일이다. 그들은 높은 학식과 노련한 정신을 자랑하며, 조직의 균열이나 시스템의 맹점을 조목조목 찾아내 발가벗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이 시스템은 리스크가 큽니다”, “이 방식은 규정에 어긋납니다”라며 장황한 훈계를 늘어놓는 모습이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수두룩하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지적은 그저 내면의 오만과 나태함을 증명하는 지독한 무능일 뿐이다. 문제점만 나열하는 회의실의 헛기침들은 결국 구성원들에게 학습된 무기력과 막연한 두려움이라는 독극물을 주입할 뿐, 조직의 영향력과 실리를 키우지 못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명확한 종착지를 직시한다면, 실체도 없는 불평을 수집하며 시간을 낭비할 여유는 없다.

기회주의적인 소음 뒤로 숨어 “나는 문제를 알고 있었다”라며 점잔을 빼는 자는 결국 망각의 늪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진짜 변화를 이끄는 독립적 자신감은 타인의 과오를 짚어내는 얄팍한 재치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 입 안의 야수를 통제하듯 섣부른 비난을 잠재우고, 현실의 주판알을 냉정하게 두드려 실질적인 대안을 내 손으로 직접 쥐어짜 내야 비로소 변화의 문이 열리는 법이다.

논리적 제안이라는 디딤돌

“논리적인 판단력을 근거로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명제는 답이 없는 세계에서 나만의 에토스(Ethos)를 정립하려는 자들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정직한 명언으로 들린다. 영리한 단독자는 결코 감정적인 독기나 비논리적인 기싸움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장에 나가기 전 질문할 내용의 대부분을 사전에 철저히 결정해 두듯, 상대방이 부정할 수 없는 날것의 데이터와 수치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그들이 던지는 새로운 제안은 허황된 명분론이나 조장된 소망의 산물이 아니다. 철저하게 분석된 지표와 현실적인 마진, 그리고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잘라낸 선택과 집중의 서슬 퍼런 결과물이다. 비평가들이 안 되는 이유들의 시방서를 뒤적이며 멈춰 서 있을 때, 이들은 “이러한 논리적 근거가 있으니, 이 방향으로 돌파해야 한다”라는 선명한 설계도를 테이블 위에 담백하게 올려놓는다.

이 압도적인 주도성 앞에서 주위의 무의미한 웅성거림과 기회주의적인 속삭임들은 일순간에 음소거 처리된다. 상대가 어떤 완고한 잣대를 들이대며 흔들려 해도, 이성과 논리로 짜인 대안의 벽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문제를 재정의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이에게 진정한 리더의 무게가 허락될 리 없다. 마지막에 판돈을 쓸어 담고 조직의 체질을 개조해 내는 진짜 승자는 말만 무성하던 광대가 아니라, 묵묵히 실전의 디딤돌을 놓고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 낸 독보적인 생존자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찾아냈느냐가 아니라, 주위의 서늘한 냉소와 소음 속에서도 내면의 고유한 주파수를 잃지 않고 꼿꼿이 대안을 관철해 낼 수 있는 영혼의 단단한 자생력을 가졌느냐이다. 타인의 과오에 들이대던 얄팍한 혀놀림을 미련 없이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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