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하면 될까?[ep.106]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정답지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배우는 법을 훈련받는다. 학교와 사회라는 거대한 교육의 틀은 언뜻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극히 기이한 패러다임이 숨어 있다. 현대의 수많은 교육 시스템과 고리타분한 이론주의자들은 무언가를 과감하게 시도하고 돌파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왜 이것을 할 수 없는가”, “어떤 규정과 한계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를 먼저 치밀하게 계산하고 증명하도록 권장해왔다.

안전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 부정론의 교육은, 결국 인간이 지닌 날것의 야성과 주도적 자신감을 본질적으로 거세해 버리는 행동일 뿐이다. 리스크를 완벽하게 회피하는 법만 배운 우등생들이 현실의 냉혹한 전장에 나와 안 되는 이유만을 늘어놓으며 멈춰 서 있을 때, 진짜 생존자들은 거친 바닥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어떻게든 일을 되게 만드는” 길을 찾아내곤 한다. 오늘은 내 안에 은밀하게 숨어 있던 교육된 유약함과 부정적 관성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할 수 없다”는 주입된 망상을 깨부수는 진짜 실행력의 본질에 대해 단단한 사색을 기록해 본다.

지식의 기만과 부정론을 생산하는 우등생들의 비극

현대 교육이 만들어낸 가장 치명적인 독극물은 바로 ‘해보지 않고 결론 내리는 신중함의 덫’이다. 많은 이들이 높은 학식과 노련한 정신을 자랑하며 책상 위에서 완벽한 가설을 설계하곤 한다. 그들은 수집한 정보와 법적 테두리, 그리고 과거의 실패 사례들을 촘촘하게 엮어 “이 프로젝트는 이러저러한 위험 요소 때문에 불가능하다”라는 장황한 보고서를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학교는 한계를 먼저 파악하고 조심하는 것을 미덕이라 가르쳤지만, 실전의 황야에서 이 같은 태도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나태한 오만에 불과하다. 주변을 보면 이런 주입된 부정론에 갇혀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무능으로 만들어버리는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머릿속으로 온갖 거창한 이론과 시방서만을 뒤적일 뿐, 행동력이 부족하여 인생 전체를 표류하게 만드는 우등생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안 되는 이유를 찾는 데 이성을 소모하느라 정작 손에 쥐어야 할 시장의 실리와 독보적인 영향력을 조금도 움켜쥐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실체도 없는 한계와 두려움의 잣대를 수집하느라 시간을 낭비할 여유 따위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안전함보다는, 차라리 날것의 데이터 앞에서 전언취소를 감행할지언정 먼저 대지를 딛고 움직이는 셈법이 정답과 훨씬 가까운 법이다.

규정의 허들을 부수는 현장의 단순명료한 정체성

복잡하게 얽힌 다수의 문제 사이에서 행정적 조율과 물리적 수치 계산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던 까다로운 정비 프로젝트를 총괄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새로 영입된 실무진들은 소위 정규 교육 과정을 완벽하게 이수한, 이론에 해박한 인재들이었다. 그들은 현장 실사를 나가기도 전에 관련 규정집과 매뉴얼을 들이밀며 내 앞에 안 되는 이유들의 목록을 길게 늘어놓았다. “구간의 병목 현상과 지자체의 제한 조항 때문에 이 일정 내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완벽한 가설이었다.

나는 그들이 가져온 두꺼운 지침서와 나태한 핑계들을 가볍게 비웃으며, 곧바로 현장으로 내려가 가공되지 않은 하얀 백지 상태에서 판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컴퓨터 모니터 뒤에 숨어 눈치를 살피던 이들의 웅성거림을 일순간에 음소거 처리하고, 오직 내 몸과 발로 직접 체화할 수 있는 날것의 데이터만을 수집했다.

불필요한 거품과 행정적 장식품들을 잘라내고,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의 명료한 정체성에 모든 역량을 압축하여 집중시켰다. 법의 테두리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회수해야 할 정당한 대가와 지분을 확실하게 가두어둘 수 있는 영악한 대안을 직접 쥐어짜 낸 것이다. 결과는 어떠했는가. 안 된다고 단언했던 우등생들의 예측을 비웃듯, 프로젝트는 정해진 기한 내에 소수점 아래 숫자까지 완벽한 성과로 증명되었다. 교육된 한계라는 안개 성벽이 주도적인 실행력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뼈저리게 깨달은 경험이었다.

학습된 무기력을 깨부순 사자의 통치력

또 다른 기억은 조직 내 신규 시스템 도입을 두고 전 부서가 팽팽한 밀당과 기싸움을 벌이던 미팅룸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구성원들은 과거의 실패 데이터와 학습된 무기력에 깊게 중독되어 있었다.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올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예전에도 해봤는데 이 리스크 때문에 안 됐다”, “우리 조직의 체질상 감당하기 어렵다”라며 시작하기도 전에 용기를 스스로 가라앉히고 있었다. 교육과 관성이 만들어낸 지독한 사각지대였다.

나는 그들의 입 안에서 흘러나오는 비기적인 변명들과 헛기침들을 걷어내 버렸다. “왜 할 수 없는가”를 증명하려 애쓰는 쓸모없는 에너지소모을 전면 금지하고, 테이블 위에 오직 정량적인 수치와 당장 실행 가능한 디딤돌만을 담백하게 올려두었다.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과제일수록 막연한 공포의 가면을 찢어발기고, 일 자체만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도록 통제권을 행사한 것이다. 미리 겁을 먹고 몸과 마음이 마비되는 비극을 막기 위한 결단이었다. 리더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뼈대를 보여주자, 부서원들은 비로소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한계 사슬을 끊어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판돈을 쓸어 담는 진짜 승자는 가장 화려한 이론을 읊조리던 자가 아니라, 현실의 주판알을 가장 냉정하게 두드려 있는 그대로의 성과를 증명해내고 끝까지 살아남은 독보적인 단독자뿐이라는 진실을 다시금 체화한 순간이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주입된 두려움과 부정론의 허상이 한순간에 밀도 없는 연기처럼 공중으로 흩어진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한계에 내 가치를 끼워 맞추고 행동을 검열하려 했던 설익은 관성들이 멈춰 선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가르쳐준 안전한 매뉴얼을 얼마나 잘 외웠느냐가 아니라, 주위의 서늘한 냉소와 “안 된다”는 소음 속에서도 내면의 고유한 주파수를 잃지 않고 꼿꼿이 중심을 지켜낼 수 있는 영혼의 단단한 자생력을 갖추었느냐이다. 고리타분한 잔소리나 겉포장만 번지르르한 예의는 홀로 서야 하는 이 거친 현실의 황야에서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한다. 남들의 혀 끝에 내 가능성을 저당 잡히던 나태한 버릇들을 미련 없이 소멸시키고, 오직 스스로를 책임지겠다는 서슬 퍼런 투명함 하나만을 남긴 채 가공되지 않은 나만의 궤적을 향해 한 걸음 더 깊숙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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