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삼가라[ep.86]

매일 아침 전장 같은 현장으로 나서기 전, 책상 위에 놓인 정밀한 도구들과 거친 작업화 끈을 동여매며 마음의 날을 벼려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부딪히며 협상을 벌이고, 내 지분과 주도권을 지켜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끊임없이 치러내곤 하는데, 그 치열한 판 위에서 내 가치를 증명하고 조직을 이끄는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사실을 매번 뼈저리게 깨닫는다.

우리는 흔히 목소리를 크게 내고 내 주장을 장황하게 늘어놓아야만 상대를 압도할 수 있을 거라는 관성적인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와 끈적한 계산이 소용돌이치는 진짜 실전의 세계에서 마주한 진실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말을 삼가고 흐름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하고 안전하게 내 영토를 지키는 방식이다. 오늘은 내 입 안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나태한 언어의 관성들을 지우개로 과감히 지워버리고, 판을 지배하는 ‘절제의 미학’에 대해 솔직한 사색의 흔적을 남겨보려 한다.

명령어 뒤에 숨은 부메랑: 닫히지 않는 입이 부르는 파멸

학창 시절 정답지 안에서 고상한 이론만 파고들던 우등생들이 사회라는 거친 황야에 나와 가장 자주 범하는 실책이 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얄팍한 재치를 과시하기 위해, 혹은 눈앞의 단적인 상황의 마찰을 참지 못해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수많은 말을 배설하듯 내뱉는 점이다. 그들은 장황한 수식어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믿지만, 냉혹한 시장은 결코 그 긴 핑계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다.

우리의 입 안에 갇혀 있는 혀는 마치 고삐 풀린 야수와 같다. 내 통제를 벗어나 한 번 날뛰기 시작한 언어는 상대방에게 내 패를 고스란히 노출하는 치명적인 독극물이 되며, 그 야수가 흩뿌린 마찰음은 다시 잡아묶기가 지극히 어렵다. 특히 조직의 모든 리스크를 온전히 홀로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나 프로젝트의 종결자가 중심을 잃고 마구 떠들어대기 시작할 때, 판은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파국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설명이 장황해지고 변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내 안의 직관과 주도권이 흐려졌다는 방증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뱉어놓은 말에 발목이 잡혀 어제 세운 가설이 틀렸음에도 전언취소를 단행하지 못하고 미련하게 버티는 나태함, 그것이야말로 안개 가득한 전장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다.

판돈을 쓸어 담는 자들의 지독한 셈법: 청각의 독점과 주도권 확보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볼 수 있나니”라는 오랜 경구는 반대로 뒤집었을 때 비로소 무서운 무기가 된다. 내가 침묵을 지키고 상대가 먼저 말을 뱉게 만들 때, 비로소 상대방의 밑천과 숨은 속셈이 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보이기 때문이다. 진짜 판을 짤 줄 아는 사자들은 내 패를 철저히 가둔 채, 상대방이 가진 행정적 압박이나 절박한 욕구의 숨은 문법을 먼저 읽어내는 데 청각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한다.

돈이 되는 확실한 기회와 내 조직의 마진을 갉아먹는 무의미한 소음들을 칼같이 분류해 내기 위해서도 말의 절제는 필수적이다. 상대가 어떤 비논리적인 기싸움과 얄팍한 기만으로 나를 흔들려 해도, 묵직한 침묵으로 대응하며 단단한 기준의 벽을 유지해야 한다. 겉으로는 엄격하고 복잡해 보이는 제도적 협상이나 신속한 타결을 두고 팽팽한 밀당을 벌여야 할 때, 이 독한 침묵의 계산법은 상대를 아사(餓死)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내가 현장에 나가기 전 질문할 내용의 대부분을 사전에 철저히 결정해 두고 정작 실전에서는 입을 무겁게 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안의 소중한 자산과 영향력을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확실하게 묶어두는 영악함은, 내 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판세의 흐름을 관조하는 주도적 자신감에서 흘러나온다. 마지막에 판돈을 쓸어 담는 진짜 생존자는 화려한 구변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광대가 아니라, 가장 냉정하게 주판알을 두드리며 상대의 패를 다 확인한 뒤 묵직한 한마디로 판을 종결짓는 자의 몫이다.

입 안의 야수를 묶고, 서슬 퍼런 직관을 벼리다

오늘 아침은 서재 책상 위에 놓인 정밀한 디지털 도구들의 서늘한 촉감을 느끼며, 내 마음과 대화 습관 속에 은밀하게 배어 있던 과시욕과 나태한 잔소리의 흔적들을 완전히 지워버린다. 남들이 자신의 얄팍한 정보력을 자랑하며 사소한 문제 앞에서도 입을 가볍게 놀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조용히 나만의 것을 증명해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실전 비즈니스의 진짜 진입장벽은 화려한 포장지 같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세상의 어떤 비논리적인 도발 앞에서도 내 중심을 완벽하게 수호해내는 압도적인 침묵의 뼈대다.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인 재치에만 의존하려 했던 과거의 안일한 소통 방식을 오늘 밤 일기장에서 깨끗이 청산하고, 개인이 각자 책임을 지고 묵묵히 결과를 내는 주도성 더욱 더 빛나는 것 같다.

관성을 깨뜨리고 주도적인 영토를 세우며

시시각각 빈번하게 변해가는 시장 환경 속에서도, 내가 내린 본질의 정의와 내 안의 언어 나침반이 단단하다면 조직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어설픈 변명과 핑계의 마침표들을 지우개로 거칠게 걷어내고, 내일 마주할 거친 전장에서 내가 품어야 할 정확한 방향성과 포용력만 가슴에 품는다.

모든 위대한 돌파는 타인의 구원이나 겉도는 훈수가 아닌, 내 안의 설익은 욕망과 혀를 스스로 통제하고 냉혹한 판을 정확히 읽어내겠다는 정직한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리더의 무게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말을 뱉을 수 있는지 자랑하는 데 있지 않고, 대화라는 칼날을 정교하게 제어하여 우리 조직의 영토와 사람들을 얼마나 단단하고 안전하게 지켜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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