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의 자세[ep95]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부딪히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내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비논리적인 마찰을 마주할 때마다, 혹은 누군가에게 억울한 공격이나 기만을 당했을 때, 인간의 내면에서는 본능적으로 보복의 욕망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셈법으로 상대를 똑같이 짓밟아 버려야만 진정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라 믿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그러나 모든 감정의 거품을 걷어내고 삶의 본질을 직시했을 때 마주하는 진실은 전혀 다르다. 상대에게 고통을 돌려주는 복수의 질주는 결국 내 삶마저 비탄의 늪으로 끌고 들어갈 뿐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안전하게 수호하고 끝내 판을 지배하게 만드는 진짜 강력한 수완은, 벼려진 칼날을 휘두르는 잔혹함이 아니라 상대를 품어 안는 압도적인 ‘관용(寬容)’에 있다. 오늘은 내 안의 설익은 적개심과 옹졸한 관성들을 청산하고, 정신의 위대함이 만들어내는 진짜 품격에 대해 단단한 독백의 궤적을 남겨보려 한다.

천박한 보복의 늪과 고귀한 정신의 희소성

세상에는 고귀한 심성, 관대한 정신, 그리고 무엇이든 품어줄 수 있는 폭넓은 아량을 가진 사람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러한 성품이 삶의 궤적에서 아름답게 꽃을 피우게 되면, 그의 이름은 그 어떤 화려한 치장이나 휘장 없이도 대중의 마음속에 찬란히 빛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토록 고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란 무척이나 드물다. 왜냐하면 관용이란 단순히 점잔을 빼고 예의를 차리는 자기기만이 아니라, 영혼의 뼈대 자체가 단단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정신의 위대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은 눈앞의 사소한 원한에 갇혀 핑계를 찾고, 자신에게 복수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은밀하게 망상의 안개를 키워가곤 한다. 상대방을 무너뜨려야만 내가 올라설 수 있다는 그 나태한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자신과 비슷한 부류들을 찾아 기만의 연대를 맺게 만들 뿐이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누군가를 증명 없이 미워하고 보복을 계획하는 데 내 아까운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만큼 최악의 무능은 없다. 흔들리는 이성과 증오 속에서 결정된 보복은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기 전에 내 내면을 먼저 치명적인 독극물로 오염시킨다. 진정으로 판을 읽을 줄 아는 단독자라면, 타인의 혀 끝에서 흘러나오는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내실을 충실히 다지며 칼날의 방향을 내 안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복수의 수레바퀴를 멈추는 통치력

“관용보다 더 좋은 수완은 없다”라는 경구는, 얄팍한 승리에 도취하여 상대를 파멸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지도와 같다. 정신이 위대한 사람은 자신에게 적을 완전히 부셔버릴 수 있는 결정적인 복수의 기회가 주어질 때조차, 결코 천박한 무력을 휘두르며 야만스런 수단에 기대지 않는다. 그는 승리하기 바로 직전, 상대의 목줄을 완벽하게 쥐고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에 오히려 사자와 같은 거대한 힘으로 복수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와 같은 관용을 베푼다.

이 독한 계산법은 상대를 향한 유약한 동정심이 아니다. 내가 굳게 쥐고 있던 주도권을 보여줌과 동시에,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며 주변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복수의 수레바퀴’를 내 손으로 직접 붙잡아 멈춰 세우는 압도적인 위용의 발현이다. 짓밟힌 상대는 공포가 아니라 리더가 지닌 영혼의 격조에 스스로 굴복하며 마음 깊이 경외심을 품게 된다.

우리가 벼려야 할 탁월한 경쟁력은 단순히 적을 제거하는 호전성이 아니라, 적마저도 내 에토스(Ethos) 앞에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단단한 기준의 정립이다. 어제 가졌던 미움의 가설이 오늘 마주한 진실 앞에서 한낱 옹졸한 감정의 낭비였음을 깨달았다면, 전언취소를 주저하지 않듯 그 미련 가득한 생각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곧바로 관용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자라내는 선택과 집중의 칼날은, 내 안의 들끓는 적개심을 통제하고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단순명료한 정체성으로 나타나야 정답과 가까워진다. 마지막에 판돈을 쓸어 담고 영토를 안전하게 수호하는 진짜 승자는, 보복의 칼춤을 추던 광대가 아니라 바다와 같은 품격으로 판 자체를 품어버린 위대한 생존자뿐이다.

마음의 진동을 멈추고, 광활한 대지를 품다

깊어가는 토요일의 정적 속에서, 지난날 사소한 마찰에 분노하고 누군가를 주관적으로 미워하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던 안일한 관성들을 가만히 복기해 본다. 타인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휘말려 내 안의 평정심을 잃고 우왕좌왕하려 했던 모든 유약함의 흔적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허황된 명분이나 증오의 성벽 뒤에 숨어 나를 기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마음에 그어둔 선명한 경계선은 외부의 도발이나 얄팍한 배신에 쉽게 허물어지는 유약한 벽이 아니다. 겉치레와 적개심이라는 이름의 거품을 완전히 걷어내고, 내 입 안의 야수를 통제하듯 섣부른 감정의 폭주를 잠재운다..

관성의 벽을 깨부수고 무한한 영토를 세우며

시시각각 빈번하게 변해가는 환경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유한한 삶이 주는 본질의 정답을 붙잡은 인간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모든 위대한 돌파는 타인의 구원이나 얄팍한 재치, 혹은 상대를 무조건 짓밟아 이기겠다는 독기에서 오지 않는다. 내 안의 설익은 욕망과 반감을 스스로 통제하고 냉혹한 판을 읽어내겠다는 정직한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진짜 무게는 얼마나 많은 적을 파멸시켰느냐에 있지 않고, 승리의 정점에서 베푸는 관용을 통해 우리 조직의 영토와 사람들을 얼마나 단단하고 안전하게 수호해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슬픔과 분노의 안개를 거칠게 지워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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