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족쇄[ep.34]

사업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 배를 띄운 지도 벌써 수개월이다. 이제는 어엿한 한 회사의 대표로서 설계도를 그리고 공정 표를 짜며 나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라는 이름의 유령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아끈다. 독립하기 전 모셨던 전 사장님, 그리고 그 주변에서 기생하며 독을 퍼뜨리는 이간질의 언어들이 내 고요한 사무실 창문을 두드린다.

최근 나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사업체에서 가장 난해한 ‘하자 보수’ 구간을 지나고 있다. 전 사장님은 여전히 나를 독립된 사업 파트너가 아닌, 지시 한 마디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과거의 직원’으로 대한다. 그가 보내는 메시지 하나, 전화 한 통에는 여전한 압박감이 서려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 밑에 있을 때가 좋았지”라는 식의 가스라이팅은 정밀하게 짜인 내 업무 몰입도를 순식간에 헤집어 놓는다.

거기에 주변 사람들의 이간질은 마치 부식된 배관에서 새어 나오는 오수와 같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전 사장님의 귀에 들어가 와전되고, 전 사장님의 분노가 다시 나에게 화살이 되어 돌아오는 악순환. 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짜증을 넘어선 치밀어 오르는 분노다. 당장이라도 전화기를 들고 논리적으로 들이받고 싶고, 그들의 무례함을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날 선 볼펜을 꽉 쥔 채 숨을 고른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라, 내 사업의 ‘기회비용’을 계산한 전략적 인내다.

얼마 전, 현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하나 있었다. 정밀하게 설계된 도면대로 시공되고 있던 구간에서, 오래전 매립되어 있던 낡은 배관 하나가 터져버린 것이다. 도면에는 표시조차 되어 있지 않던, 과거의 유산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흙탕물을 보며 작업자들은 당황했고, 공정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그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배관을 틀어막으며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전 사장님과의 마찰과 이간질이 바로 이 ‘오래된 배관’과 같다는 것을. 내가 독립하기 전, 그 조직에 몸담았던 시간 동안 쌓여온 보이지 않는 찌꺼기들이 이제야 터져 나온 것뿐이다. 여기서 내가 분노를 표출하며 같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것은, 터진 배관 옆에서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업가에게 분노는 가장 비싼 사치재다. 내가 그들에게 감정을 쏟아붓는 순간, 내 공정 표는 흔들리고 리스크 관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전 사장님이 나를 여전히 직원처럼 대하며 압박을 가할 때, 나는 그를 미워하기보다 ‘아직 내 성장의 크기가 그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만큼 작구나’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로 했다. 압도적인 실력과 결과로 그가 감히 나를 하대할 수 없는 위치에 서는 것, 그것만이 이 지질한 관계를 끊어낼 유일한 탈출구다.

이간질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내 장부의 숫자를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 헛소문은 안개와 같아서 햇살이 비치면 사라지지만, 내가 공들여 쌓은 실적과 데이터는 바위처럼 남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헐뜯는 이들의 에너지는 결국 소멸하겠지만, 참고 견디며 축적한 나의 내공은 언젠가 거대한 폭발력이 될 것임을 믿는다.

오늘도 퇴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로의 불빛들을 보며 다짐한다. 마음속에 들끓는 화(火)를 동력삼아 내 사업의 기둥을 더 깊게 박겠다고. 전 사장님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나는 더 치밀하게 리스크를 분석하고 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다.

분노를 삼키는 맛은 쓰디쓰지만, 그 쓴맛이 내 판단력을 흐리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직원이 아닌, 내 운명의 설계자다. 이 지독한 인내의 시간 또한 내 사업의 가장 단단한 기초를 다지는 공정의 일부임을, 나는 확신한다.

폭풍은 머지않아 지나갈 것이고, 남겨진 자리에는 오직 실력으로 증명된 나의 이름 석 자만이 선명하게 빛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묵묵히, 내 책상 위의 서류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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