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방향[ep.41]

오늘따라 서재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이 유난히 선명하다.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공기는 차분하고, 마음은 평소보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의 커서만 바라보다가, 문득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업가로 살아가며 숫자를 쫓고, 효율을 계산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하는 삶. 그 치열한 레이스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집중해왔던가. 결국 그 모든 분투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 곁을 지켜주는 가족, 그리고 영혼의 휴식처가 되어주는 친구들이다.


1. 가족: 가장 낮은 곳에서도 나를 믿어주는 유일한 뿌리

사업을 하다 보면 세상이 오직 성과로만 나를 정의하려 할 때가 있다. 내가 가진 결과물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되어버리는 냉혹한 정글.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대표’도, ‘사업가’도 아니다. 그저 한 여자의 남편이고, 조카들의 삼촌이며, 부모님의 아들일 뿐이다.

가족은 내가 가장 화려할 때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가장 초라하고 무너졌을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등을 내어주는 사람들이다.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따뜻한 식사 한 끼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릴 때, 나는 비로소 안도한다. “수고했어”라는 짧은 한마디가 수억 원의 계약 성사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이유는, 그 말속에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들어 조카들과 시간을 보내며 느끼는 생명의 경이로움은 형언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아무런 계산 없는 웃음을 보고 있으면, 내가 세상을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뿌리가 단단하게 박혀 있기에, 나는 어떤 거친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2. 친구: 영혼의 무게를 나누는 거울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는 존재의 의미는 점점 더 짙어진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소중한 이유는 그들이 나의 ‘가장 날것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만난 관계들이 대개 목적과 이해타산에 기반한다면, 오랜 친구들은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궁금해한다.

가끔 사업상의 고민이 깊어질 때, 친구와 나누는 술 한 잔은 그 어떤 경영 컨설팅보다 값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내 고단함을 읽어주는 사람. “야, 너답지 않게 왜 그래? 그냥 해버려!”라고 툭 던지는 투박한 격려 한마디에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곤 한다.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려 할 때,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울과 같다. 함께 철없던 시절을 공유하고, 서로의 성장을 묵묵히 지켜봐 온 그들이 있기에 나는 고립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진정한 연결은 숫자가 아니라 깊이에서 온다는 것을 친구들을 보며 매일 배운다.


3. 결국, 사람이 전부다

문득 서재 구석에 놓인 강아지들을 본다. 치와와와 포메라니안, 이 작은 생명체들조차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준다. 이들이 주는 안식 또한 내 가족의 확장이다.

사업적 성공, 경제적 자유, 51세 은퇴라는 원대한 목표.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만약 성공의 끝에 나를 반겨줄 가족이 없고, 기쁨을 나눌 친구가 없다면 그 성공은 얼마나 공허할까.

오늘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적고 싶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퇴근해서 아내와 손을 잡고 걷고, 주말엔 친구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겠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내가 짊어진 짐을 기꺼이 나누어 들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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