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짙은 감청색이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오늘 처리해야 할 현장 도면과 계약서들로 빼곡하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돈독이 올랐다”거나 “지독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독립하여 내 사업을 일궈가는 지금, 나에게 ‘돈이 되는 일’이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내 삶과 가족을 지켜낼 유일한 방패이자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은 유독 힘들었다. 업무의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잡무’와 ‘감정 노동’이 몰아친 날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현장의 설계 변경 건으로 만난 관계자들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공정을 트집 잡았고, 그 과정에서 뻔히 보이는 이간질과 날 선 말들이 오갔다. “사장님, 이런 건 밑에 사람 시키지 왜 직접 나오세요?”라는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순간 울컥함이 치밀었다. 내적 마찰의 시작이었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가며 진흙탕 싸움을 해야 하나, 내 가치가 고작 이런 감정 소모에 낭비되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화려한 성공을 꿈꾸던 사업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초라한 현실만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이 불쾌한 대화가 성사시켜줄 계약의 가치, 그리고 그 수익이 가져다줄 우리 집의 평온을 생각하며 자존심을 잠시 지불하고 기회를 사기로 했다. 지난달, 폭우가 쏟아지던 날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기상 악화로 모든 작업이 중단될 위기였지만, 그날의 공정을 넘기면 연쇄적으로 일정이 꼬여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직접 작업복을 입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빗줄기가 눈을 찔러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횡단보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차선이 제대로 구획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장화 속으로 빗물이 차올라 발이 불어 터지는 감각 속에서도 내 머릿속은 오직 하나였다. ‘오늘 이 일을 완수해야 내일의 리스크가 0%가 된다.’ 남들이 미친 짓이라 부르던 그 행위 끝에 얻은 추가 수익 30만 원은 내 사업체의 한 달 치 소모품비를 해결하고, 우리 집 강아지들의 사료를 최고급으로 바꿔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악착같이 매달린 덕분에 얻은 성취감은 낮아졌던 자존감을 다시 세워주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이처럼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는 감정을 분리한다. 마치 기계가 공정을 처리하듯, 논리적인 순서를 정해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첫째로 이 일이 내 목표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확인하고, 둘째로 감정적인 소음을 차단하고 물리적인 행동에만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이 일이 끝났을 때 찾아올 ‘정적’과 ‘보상’을 미리 상상한다. 오늘도 그렇게 한 단계씩 문제를 풀어나갔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 때마다 비참함은 서서히 ‘정복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인생의 완성도 높히기 위해 꼭 필요한 부품을 정교하게 다듬는 ‘마스터’가 되어가고 있었다.

퇴근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들이 오늘따라 유독 따뜻해 보였다. 낮 동안 나를 괴롭혔던 모든 내적 마찰과 낮은 자존감은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눈 녹듯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달려 나오는 치와와와 포메라니안의 경쾌한 발소리, 그리고 주방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며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모습. 식탁 위에 놓인 따뜻한 찌개 냄새를 맡으며 깨닫는다. 내가 낮에 겪었던 그 모든 굴욕과 치열함이 바로 이 풍경을 지키기 위한 비용이지 않았나 싶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라는 아내의 한마디에 마음의 피곤했던 정신과 몸이 스르륵 녹아 내린다.

화려한 결과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아무도 보기 싫어하는 곳을 먼저 들여다보고,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가장 먼저 해결해내는 사람이다. 오늘 나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사이로 내일의 햇살이 비치듯, 나의 독립과 성공도 이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거치며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오늘 흘린 땀방울이 내일의 자산이 되고, 오늘 참아낸 소음이 훗날의 명예가 되지 않을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독하게, 그러나 더 지혜롭게 나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