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종종 거대하고 고상해 보이는 거대 담론에 영혼을 빼앗기곤 한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 속 국가의 제도적 한계나 복잡하게 얽힌 세계 경제의 향방, 혹은 거대한 시장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밤을 새워가며 염려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세운다. 마치 온 세상의 문제를 내 어깨로 무겁게 짊어진 것처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주판알을 두드린다.
하지만 지극히 부끄럽게도, 그 시선의 끝에서 정작 내 가장 가까운 영토인 ‘부모 형제’와의 가벼운 잡담조차 나누지 못하는 메마른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하게 되었다. 멀리 있는 인류를 사랑하기는 쉽지만 눈앞의 가족과 눈을 맞추는 것은 귀찮아하는 지독한 자기기만이이자 이기적인 관성이었다. 겉포장만 번지르르한 고결한 이론주의자처럼 굴었을 뿐, 정작 내 언어의 나침반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단 한 번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구를 탓하거나 안 되는 이유를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이 차가운 단절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결국 나부터 즉각 달라져야 함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오늘은 얄팍한 명분론 뒤에 숨어 가장 가까운 이들을 방치했던 나의 부끄러운 두 가지 궤적을 복기하며, 날것 그대로의 참회와 단단한 다짐을 기록해 보려 한다.
모니터 속 금리와 등 돌린 노모의 식탁

몇 달 전, 주말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 집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당시 전 세계적인 자산 시장의 변동성과 거시 경제의 하방 압력에 극도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시시각각 변하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지표와 외환 시장 보고서를 읽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앞으로 닥칠 시장의 병목을 어떻게 방어하고 리스크를 헤징할 것인가에 대한 정밀한 계산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슬며시 다가와 낡은 의자에 걸터앉으셨다. 그러고는 “요즘 앞마당에 심은 고추가 참 잘 자란다”, “이웃집 진돗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참 예쁘더라” 같은 지극히 사소하고 가벼운 동네 이야기를 건네오셨다.
당시 내 반응은 차갑다 못해 나태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네, 그렇네요”라는 영혼 없는 대답만을 단어의 마침표처럼 던졌을 뿐이다. 거대한 세계 경제의 셈법을 굴리는 나에게 어머니의 소박한 이야기는 내 에너지를 갉아먹는 무의미한 소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 서재로 돌아왔을 때, 문득 거실 불이 꺼진 주방 식탁에 홀로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주름진 뒷모습이 서늘하게 가슴을 찔렀다.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정작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어머니의 사소한 일상조차 품어 안지 못하는 고상한 척하는 예의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겉치레 평판에 안주하느라 진짜 소중한 내 영토의 알맹이를 완전히 방치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뼈아픈 순간이었다.
텐더 협상의 영악함과 형제의 굳게 닫힌 문
또 다른 기억은 동생과의 짧은 통화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나는 대규모 정부 계약 과 복잡한 제도적 조율 과정을 앞두고, 맞은편 협상가들의 목줄을 쥐기 위한 팽팽한 밀당의 심리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행정적 압박과 가려운 곳을 읽어내어 우리가 원하는 지분을 손해 보지 않고 확실하게 가두어두려는 영악한 가설을 짜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정말 오랜만에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형, 요즘 날씨가 너무 더운데 건강은 괜찮아? 별일 없지?”라는 지극히 평범한 안부 인사였다.
내 입에서는 주저함도 없이 서두르는 기색이 섞인 칼날 같은 언어가 튀어나왔다. “어, 요즘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너무 없네. 용건만 간단히 말해줄래?” 동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아니,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바쁘면 나중에 통화하자”라며 나지막이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끝난 신호음 너머로 지독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와 태도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고상한 숭고함까지 가장하면서, 정작 평생을 함께해 온 형제의 순수한 다정함 앞에서는 효율성이라는 얄팍한 핑계를 대며 문을 굳게 닫아걸어 버린 것이다.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잘라내는 선택과 집중의 칼날을, 가장 엉뚱하고 잔인한 방향으로 휘두른 셈이다. 이보다 더 참혹한 무능은 없었다.
결국 내 생각의 회로를 지배하던 그 화려한 거대 담론들은, 어쩌면 나를 온전히 마주하기 두려워 만들어낸 거대한 안개 성벽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이나 거창한 명분 뒤로 숨어 가장 가까운 이들과의 소통을 귀찮아했던 유약한 관성들을 오늘 이 자리에서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엄격한 진실을 직시한다면, 실체도 없는 국가적 걱정 뒤에 숨어 당장 내 앞에 있는 부모 형제의 손을 놓쳐버릴 여유 따위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 거창한 수사나 겉포장만 번지르르한 지식은 홀로 서야 하는 이 거친 황야에서 아무런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내일 아침의 문을 열어젖힐 때는 스마트폰의 경제 지표를 잠시 끄고, 어머니의 고추밭 이야기와 동생의 무해한 안부 속에 내 주체적인 숨통을 틔울 것이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영토가 없듯이, 가족과의 사소한 잡담을 수호해 내는 단단한 자생력이야말로 내 존재의 격조를 증명하는 진짜 뼈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