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종[ep.37]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창밖은 아직 짙은 감청색이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오늘 처리해야 할 현장 도면과 계약서들로 빼곡하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돈독이 올랐다”거나 “지독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두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독립하여 내 사업을 일궈가는 지금, 나에게 ‘돈이 되는 일’이란 단순한 탐욕이 아니라 내 삶과 가족을 지켜낼 유일한 방패이자 책임감이기 때문이다. 오늘 오전은 유독 힘들었다. … Read more

고요한 뒤 찾아오는 소용돌이[ep.36]

오늘도 어김없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무게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독립을 선언하고 내 사업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피해갈 수 없는 ‘그 일’이 오늘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과제다. 업무의 특성 상 반드시 내가 직접 처리해야만 하고, 이 과정 없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 Read more

소음이 멈추는 곳[ep.35]

치열했던 현장의 소음과 서류 뭉치 사이의 압박감에서 벗어난 주말 저녁. 나는 비로소 일 할 때의 날 선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장 무방비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 밖을 나선다. 내 옆에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인 아내, 그리고 우리 집의 활력소인 두 녀석, 강아지 둘이 발맞추어 걷고 있다. 예쁜 조명이 수놓아진 공원 산책로는 낮의 열기가 식어 기분 좋은 서늘함이 … Read more

보이지 않는 족쇄[ep.34]

사업이라는 거친 바다에 내 배를 띄운 지도 벌써 수개월이다. 이제는 어엿한 한 회사의 대표로서 설계도를 그리고 공정 표를 짜며 나만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과거라는 이름의 유령은 생각보다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아끈다. 독립하기 전 모셨던 전 사장님, 그리고 그 주변에서 기생하며 독을 퍼뜨리는 이간질의 언어들이 내 고요한 사무실 창문을 두드린다. 최근 나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 Read more

치열했던 시기가 지난 뒤 정비[ep.33]

연초부터 몰아쳤던 잔인할 만큼 치열했던 사업의 전쟁이 드디어 끝을 보이고 있다. 마치 거센 풍랑 속에서 키를 놓지 않기 위해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던 항해사처럼, 폭풍이 잦아든 바다 위에서 나는 비로소 젖은 옷을 벗고 거친 숨을 고른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가던 관성을 잠시 멈추고,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 일만 하면 되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가 도래했다. 하지만 … Read more

가장 정교한 설계도, ‘우리’라는 이름의 생명 준비[ep.32]

사업을 하며 수많은 계약서를 검토하고 정밀한 공정 표를 짜는 것에 익숙해진 나였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치밀하게 준비하면 리스크는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임신’ 또한 우리 부부에게 당연히 찾아올 자연스러운 순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거대한 사업체는 가끔 인간의 오만한 계산기를 비웃듯,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던져놓곤 한다. 몇 달간의 시도의 결과가 매번 한 … Read more

진흙탕 싸움[ep.31]

사업이라는 망망대해에 배를 띄우고 가장 먼저 배운 것은, 파도가 외부에서만 몰아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내가 배 위에 올려둔 사람들, 혹은 같은 바다를 항해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던지는 오물과 이간질이 배를 더 깊게 침몰시키려 한다. 지난 며칠이 그랬다.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지어낸 이야기들이 난무했고, 내가 내뱉지도 않은 말들이 주어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다. 처음에는 지독한 억울함이 목 … Read more

해일처럼 밀려온 기회, 그리고 노를 젖은 손[ep.30]

인생은 가끔 예고 없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지난 이틀간 내 스마트폰과 이메일 함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댔다. 평소 공들여온 여러 건의 사업 계약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성사되었다. 숫자로 환산되는 ‘확정된 수익’의 단위가 커질수록 가슴 한구석에서는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독립을 선언하고 나만의 길을 묵묵히 닦아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이자, 내 신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명확한 성적표였다. … Read more

소음 속에 새겨넣은 고요의 기록[ep.29]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천장은 어제와 다름없이 무거웠다. 창밖으로 비치는 회색빛 도심은 벌써부터 분주한 소음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몸은 아직 어제의 피로를 다 뱉어내지 못한 채 눅눅했지만, 나는 습관처럼 몸을 일으켜 다시 세상을 향한 갑옷을 챙겨 입는다.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나를 감싸고 있던 따뜻한 공기는 날카로운 긴장감으로 치환된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내려가는 동안 나는 오늘의 ‘예상 리스크’를 머릿속으로 … Read more

소소한 행복과 가족[ep.28]

평일의 알람 소리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잠의 막을 찢어놓는 것이라면, 주말 아침의 깨어남은 서서히 스며드는 잉크와 같다. 일요일 오전 10시. 창가의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방 안의 먼지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쯤, 눈을 뜨게 되었다. 곁에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내가 있고, 발치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털 뭉치 두 마리가 쌕쌕거리며 체온을 … Read more